정통부가 권하는 쇼핑의 지혜(?)

2007/07/05 - Atom

비유 1)
기름을 넣으러 주유소에 들렀다. ‘만땅’을 외치고 신용카드를 건네주려는데 주유원이 머뭇거리며 눈치를 본다.
“손님, 오늘부터 경유는 만땅이 안 되고요. 2만 원어치 이상 주유하실 수 없습니다”
“뭐라고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에요?”
“휘발유차만 만땅 넣으실 수 있어요. 그것도 2000cc 이상 세단 차종만 가능합니다. 어제부터 유류법이 바뀌었어요. 모르셨어요? 다음에 휘발유차를 바꾼 다음 이용해주세요. 전 바빠서 이만~”
“…….. @_@”

비유 2)
무더운 여름날 오후, 편의점에 들러 생수 한 병을 사기로 했다. 그런데 냉장고엔 콜라와 오렌지 주스만 있을 뿐 생수가 없는 게 아닌가.
“주인아저씨! 여기 생수 작은 거 없어요?”
“손님, 어제 부로 250mml 생수 판매가 중단되었습니다. 꼭 마시시려면 2리터짜리 큰 통을 사시던지 아님 콜라를 사드세요”
“아니 그런게 어딨어요?”
“식음료법이 바뀌어서 그래요. 콜라 회사에서 로비를 걸었다는 얘기도 있고 … 아무튼 250mml 생수는 재고가 바닥나서 저희도 팔고 싶어도 못 팝니다.”
“…….. @_@”


황당한 비유로 보일지 모르지만, 정확히 같은 일이 통신시장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010 통합번호 제도가 바로 그것이죠.

이번에 출시예정이라는 쿼티 자판이 장착된 신형 스마트폰을 구입하기 위해 이것저것 알아보다 3G폰 구입을 원한다면 강제로 010 번호를 써야 한다는 사실은 새삼 깨달았습니다. ‘에이~ 설마, 무슨 꼼수가 있겠지’라고 쉽게 생각했는데, 현실적으로 방법이 없더군요. 투 넘버를 쓰건, 기계를 두 대 가지고 다니건, 번호이동을 하건, 심지어 기변을 하건, 어떤 경우든 3G폰을 쓰고 싶다면 기존에 쓰던 011 번호를 버리고 새로운 010 번호를 할당받아야 합니다.

별로 자부심도 없고 자랑스럽지도 않지만, 011 번호를 지난 11년간 사용해왔습니다. 10년이 넘다 보니 이젠 번호를 바꾸고 싶어도 그러지 못합니다. 개인 기호 차원의 문제에서 벗어나 버린 것이죠. 가족과 친구들, 직장 동료는 그렇다 치더라도 수많은 업무 연락처와 거래처, 지인들, 동창들, 전 직장 동료들은 어떻게 합니까. 휴대폰에 넣어둔 연락처만 300건 가까이 됩니다. 명함철과 전화번호를 적어놓은 폰북에 담긴 연락처까지 포함하면 족히 600~700건은 될 겁니다.

학생들이야 일부러 전화번호를 바꾸는 일도 있다지만, 직장인들 – 특히 필자처럼 이력이 많은 비즈니스맨에게 전화번호는 거의 유일하게 이어진 인연의 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확실하고 곧잘 바뀌는 이메일이나 메신저에 비하면 전화번호는 이름이나 주민번호와 사실상 같은 무게라 할 수 있습니다.

번호통합의 취지를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러나 한정된 번호자원의 효율적 사용, 번호의 브랜드화 방지, 이용자 편리성 증대라는 취지가 공허한 구호로 들릴 뿐, 휴대폰 앞자리 번호와 효율성 사이에 어떠한 연관 관계가 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번호의 브랜드화 방지? 번호의 브랜드화가 나쁘다는 건가요? 018과 019도 브랜드화를 하면 되지 않나요? SHOW와 17마일리지 광고에 퍼붓는 돈이면 브랜드 하나쯤 만드는 건 일도 아닐 텐데 말입니다. S사의 독점을 규제하고자 하는 K사와 L사의 로비, 혹은 정통부의 편들기 외에 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용자 편리성 증대? 고작 휴대폰 앞번호 세 자리를 누르지 않는 게 편리성 증대인가요? 거참 멋진 발상이군요.

혹자는 말합니다. 1년간 무료 번호 안내와 SMS 자동 수신 전환 서비스가 제공되므로 이용자가 수고할 일은 없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1년이 넘으면 유료 서비스더군요. 혹시, 그 혹자가 대신해서 수신 전환 이용료를 내줄 건가요? SMS 이용료조차 한 푼도 내리지 않는 통신사들이 잘도 서비스해주겠습니다. 모 통신사는 아직도 발신자번호표시(CID) 이용료 꼬박꼬박 받고 있더군요. 데이터 요금 쪽은 얘기도 꺼내기 싫습니다.

또 다른 혹자는 말합니다. 통신주파수는 정부(국가)의 소유이며, 번호는 단지 개인이 임대한 것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뭐, 그렇다 칩시다. 그런데 그 임대 기한을 국민의 동의도 없이 정부가 내키는 대로 늘였다 줄였다 해도 됩니까? 주택 전세도 임대차보호법이 있고 상도가 있고 관습이라는 게 있는데, 임대 기한도 정하지 않은 채 번호를 나누어줄 때는 언제고, 지금 와서 다시 내놓으라니요. 약관에 적어놓았나요? 휴대폰 구입할 때 설명을 해주었나요?

정통부와 통신사업자 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더 불편하고 번거롭고 납득하기 어려운 정책이 위에서 열거한 별로 설득력 없는 이유로 인해 강제로 집행된다는 사실입니다. 소비자의 선택권이라는 개념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보내 버린 채 오로지 국가와 기업의 효율성과 이익만을 따지는군요. 개인과 소비자의 효율성과 이익은 개무시해도 되는 X입니까?

쓰다 보니 흥분했군요. ^^;
애플 아이폰도 강 건너 축제라 아쉬운 판국에 국산품 애용 한 번 하려 했더니 찬물을 끼얹는군요. 그냥 쓰던 폰이나 마르고 닳도록 써야겠습니다. 아니면 하반기 외국계 M사에서 출시한다는 쿼티 스마트폰을 기다려야겠습니다. 그건 2G 방식이라서 쳐다보기도 싫은 010 번호 대신 기존에 쓰던 번호를 그대로 쓸 수 있다는군요.

CDMA 통신강국 대한민국, 밀어주고 끌어주고 참 (통신)기업하기 좋은 나랍니다. 짝짝짝~

comments

› tags: 010 / 로비 / 불공정 / 정보통신부 / 정통부 / 통신사 / 통합번호 / 휴대폰 /

Comments

  1. 임프레스 매거진말하길

    + KTF `3세대 올인` … SKT·LGT 공동 방어 + 2월 이통시장, 010신규 가입 증가세 두드러져 + 삼일절에 불붙은 `HSDPA 경쟁` 3세대 통신망인 HSDPA경쟁이 불붙으면서 영상통화 시대가 열린 것처럼 떠들고 있다. 더군다나 2위 사업자인 KTF는 SKT를 잡기위해 2008년부터는 2세대망인 CDMA망에는 신규가입자를 받지 않겠다고 한다. 미친게 아닌가. 3세대망에는 010을 제외한 011, 016, 017, 018, 019번호를 사..

  2. 불가사의말하길

    번호가 바뀌는것에 대단히 민감 하시군…
    집 전화번호 국번 바뀔때도 그러셨습니까?
    비지니스 맨의 전화번호가 바뀐다고 비지니스가 안된다면 그건 무능력해서
    그런게 아닐까 생각 됩니다.본인하고 연결 고리를 전화번호 밖에 없다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 때문이 아닌지 사료됩니다.
    오히려 그걸 핑계로 관리차원에서 전화번호가 변경되었다고 안부전화라도 하지요.

  3. 굿글말하길

    팩트에 발끈해서 댓글을 다신 걸 보니 이해관계자 정도 되시나 보군요. 영업과 마케팅일을 한 번이라도 해보신 분인지 의문스럽습니다. 관리차원에서 안부 드리는 것와 고정 연락처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얘기죠.

    오히려 번호를 바꾸고도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정책 입안자 혹은 이해관계자가 무능력에 가깝지 않을까요?

    인신공격말고 적당한 논리나 근거로서 반박 댓글을 달아주셨더라면 좋았을텐데 … 그런 점이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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