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적인 야근의 이유

김국현님의 한국 IT산업의 승수효과는 환상이란 글을 읽고 덧붙여 한마디.
한국의 하청 시스템통합(SI) 중심 IT 산업 구조의 악순환을 논할 능력은 안되고 그로 인한 폐해 중 하나인 야근 문제에 대해 살짝 짚어본다.

요즘엔 비교적 시간을 자유롭게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거의 매일 야근을 해야하는 처지였다. ‘월화수목금금금’까지는 아니더라도 ‘월화수목금금(일)’ 정도는 됐다.

이른바 고질적인 야근인데 … 일이 그만큼 많아서 그랬냐면 단연코 “아니올시다”다. 자의반 타의반이랄까. 고백컨데 조직이나 윗사람 탓을 하기 전에 나부터 문제가 좀 있었다. 소위 자발적인 야근 … 그로인한 대내외의 불협화음. 그게 야근에 관한 내 문제였다.

정말 마감에 쫒겨서 (불가피하게) 단기적인 야근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고질적인 야근의 원인은 다음과 같이 몇가지로 간추릴 수 있을 듯 하다.

1. 타의에 의한 …

– 상사(사주)의 마인드
인지상정이라 … 늦게까지 남아서 일에 몰두하는 모습이 상사나 사주 입장에선 이뻐보일 수밖에 없다. 자세한 속사정을 모를 경우 ‘이 친구 열심히 하는군’ 정도로 긍정적으로 해석된다. 딱히 내색하지 않더라도 묵묵히 오래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바람직한 근로자상으로 비춰지는 것이 우리네 일반적인 정서다. 이런 상사나 사주의 정서는 곧 조직의 정서로 투영되기 마련이며 딱히 제도적인 장치가 없는 경우 고질적인 야근이라는 형태로 굳어진다.

– 불합리한 일정
당초 8주간의 개발 일정이 갑자기 4주로 줄어들었다.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은 한정돼 있지만 산출물은 제시간에 나와야 한다. 우스갯소리로 ‘안되면 되게 하라’가 아니라 ‘안되면 공돌이를 갈아 넣어라’다. -_-; 그리고 이러한 일정은 계속 반복된다. 불합리한 일정이 나오는 이유는 해당 부서나 관리자의 무능력, 영업 등 협업부서와의 불화, 정치적 왕따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 바닥의 생태계 즉, ‘갑’ 또는 ‘을’의 횡포다.

– 과도한 업무량
불합리한 일정으로 인해 개인에게 과도한 업무량이 주어진다. 회사의 기대가 커서 일수도 있지만 보통 M/M 기준으로 따지는 일정 관계상 적은 인원으로 많은 일을 해야 회사에 수익이 생긴다. (물론 계약서에는 최대의 인원으로 최대의 퍼포먼스를 낸다라고 기재되어 있겠지만) 때문에 어느 한 부분(혹은 개인)에서 지연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제한된 일정 내에서 지연을 극복하는 방법은? 야근이다.

2. 자의에 의한 …

– 업무 스트레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늦어지고, 늦어지면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주어진 업무를 제대로 완수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과도한 시간 투자 즉, 야근을 선택하게 된다. 심리적으로는 약간의 면피성도 있는데, 가령 ‘내가 비록 미숙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하니 봐달라’는 메시지도 포함하고 있다.

– 분위기 편승
남들 다 야근하니까 나도 야근한다는 주의다. 이거 … 한심해 보이지만 의외로 꽤 된다. 타의에 의한 상사(사주)의 보이지 않는 압력도 있겠지만, 결국 눈치봐서 본인이 선택하는 셈이다. 특히 경직되고 보수적인 조직의 경우 분위기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 차라리 회사가 편해서
집보다 회사가 편하다는 이유다. 하위직보다는 차부장급 이상 간부직에서 이러한 현상이 종종 발생한다. 40대 이후 중년이라면 집에 일찍 가봤자 반가워하는 식구들도 없고 집안일 거들기도 귀찮고 오히려 거추장스러워 방해꾼 취급 받기 일쑤다. 아이들도 커서 가장과의 대화가 거의 없는 편. 그러니 회사에 남아 일하는 게 오히려 속 편한 경우다. 이미 일에 최적화된 인생인데다 회사에서는 좋은 대우와 말 잘 듣는 부하직원들이 있다.

– 기타
기러기아빠, 주말부부, 장기독신생활 등등 개인생활과 업무의 구분이 희미한 경우다. ‘딱히 집에 가서 할 일도 없는데 저녁 먹고 일이나 하자’는 식이다.

최악의 경우가 .. 딱히 그래야 하는 이유도 없는데 낮에 놀고 밤에 시간 때우는 식의 습관적인 야근이다.
시간단위당 업무효율성은 측정하기 힘들고 근태카드에 찍힌 업무시간은 뚜렷하니 장시간 근무에 매달린다. 딱히 숫자가 나오는 매출부서가 아닌 개발/연구부서의 경우 개인 성과측정의 기준이 애매하다. 거기다 일은 많고 팀웍을 중시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부서 전체적인 야근의 일상화로 이어진다.

3.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여기에 대해 많은 분들이 논한 바 있지만, 솔직히 딱 부러지는 대안은 없다. 그래서 많은 직장인들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야근을 하는 거다.

상사나 사주의 마인드를 일개 직원이 바꿀 수 있을까?
계약상의 갑에게 그런 무리한 일정은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맞설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얘기다(라고 쓰고 불가능하다고 읽는다)

개인이나 팀단위에서 할 수 있는 야근 방지 방법이라고 해봤자 과도한 업무량이나 일정을 효율적으로 배분 관리하는 정도에 그친다. 특정 과업을 추친함에 있어 지연 현상이 발생할 때 – 이는 생산관리에서 병목현상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전체 시스템의 성능이나 용량이 하나의 구성 요소로 인해 제한을 받는 현상을 말한다 –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약조건이론(TOC; Theory of Constraints) 등 몇가지 이론적 기반을 활용할 수 있다.

늦어지는 원인을 파악해 자원을 집중함으로 빠른 시간내에 효과적으로 해결한다는 개념이지만 생산 현장이 아닌 IT 개발 환경에서 딱 들어맞진 않는다. 개개인의 문제도 있겠지만 보통은 시스템의 문제로 관리자의 역할과 능력이 중요하다. 그런데 관리자가 고문관이라면? 이것도 답이 없다 -_-;

다만 장기적인 대안은 있다.
당신이 중간 관리자나 임원 혹은 사주가 되었을 때, 구악을 답습하지 않는 것이다.

모종의 캠페인이나 정책, IT 생태계의 변화를 통해 고질적인 야근이라는 악습을 타파한다는 것은 다소 이상론이지 않나 싶다.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결국 개인이다. 현재의 개인이 미래에 의사결정권을 가지게 되었을 때,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불합리한 관습과 시스템을 타파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야근’에 대한 담론이 블로고스피어나 소셜미디어쪽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본다. 거기에 나도 일조하고자 하는 것이고.

결론 세대론으로 귀결되는데 … 한 세대가 지나야 해결되는 문제라고 한다면 너무 무책임한 결론일까?

2 thoughts on “고질적인 야근의 이유

  1. WBG라고 기업 경영 게임을 해보면서 느낀건,
    한번 뽑은 인원을 유지하는건 돈이 많이 든다는것이고 장기적인 리스크가 된다는 것이었죠.
    야근비를 주는게 기업에 더 큰 이익이 되더라고요.

    아주 간단하게는, 야근비를 신규 인원뽑는것보다 더 큰 부담이 되도록 하면 새로 뽑아주거나, 업무량을 제대로 분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만, 그런 경우에는 결국 실적이 단위 조직의 리더에게로 돌아가게 되어, 야근하고 야근했다고 말도 못꺼내는 그런 일이 생길수 있죠. 뭐. 생기고 있고요 ㅋㅋ

    자원봉사야근이랄까요. 이런건 법적으로 제제를 가한다고 해도, 자기 밥줄 놓기 싫은 사람들이 스스로 신고할것 같지도 않고. 뭔가 강력한 힘의 개입이 있어야 가능할지도 모르겠어요.

    여튼, 게임을 잠시 해보았을때 회사 오너라면 당연히 야근을 시킬것 같아요.

    1. “회사 오너라면 당연히 야근을 시킬것 같아요.” 라는 대목에 어느정도 공감합니다 … 인지상정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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