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는 중요하지 않다?

지난 2003년, 저명한 경영 컨설턴트인 니콜라스 카(Nicholas G. Carr)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기고한 한 편의 논문이 미국 IT 업계를 논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논문의 제목은 ‘IT Doesn’t Matter’ – IT는 중요하다 않다는 얘기다.

논문이 주장하는 바는 IT가 보편화되고 일상화되면서 더이상 경쟁력 있는 산업이 아니라는 것. 철도나 전기, 자동차, PC가 그랬던 것처럼 IT 역시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극심한 경쟁과 낮아진 비용, 통신망의 발달로 인해 누구나 손쉽게 IT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 첨단 산업으로서의 위상과 경쟁 우위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IT는 과연 기업의 경쟁력 향상과 차별화에 기여를 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당신의 회사는 얼마만큼 그것을 구현하고 있는가?”

이런 카의 질문은 그 해 IT 업계의 반발과 거친 논쟁을 유발했다.

당시 이에 대해 미국 IT 업계가 내놓은 정답(에 가까운 답변)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IT 과잉 투자가 있었고 이로 인해 투입된 비용만큼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지 못한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IT를 적절하게 활용했을 때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기업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는데 일조하며, 그 사례는 매우 다양하다.”라는 것. 부작용을 참작하되 IT의 가치는 여전히 매력적이라는 결론이다.

잠깐 화제를 돌려보자.
본 섹션의 칼럼니스트이기도 한 김국현님의 ‘낭만 IT’는 필자가 즐겨보는 IT 관련 카툰이다. 특히 IT Girl이라는 카툰을 재미있게 봤는데, 단순한 재미를 넘어 IT와 일반 대중간의 심각한 간격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자, 이제 필자가 니콜라스 카의 질문과 함께 던지고 싶은 화두는 ‘IT와 대중간의 괴리’이다.
IT가 중요하든 그렇지 않든, IT는 나름대로 성장과 혁신을 거듭하면서 발전해 왔다. 기업과 조직, 그리고 개인의 생산성 향상과 효율 증대, 경쟁력 확보를 위한 다양한 해결책과 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IT를 잘 알고 있는가? 당신은 과연 IT를 얼마나 활용하고 있는가?
이러한 얘기는 형이상학적인 얘기일 뿐이다.
현실은 … … …

얼마 전, 오랜만에 대학 동창회에 참가했다.
술잔이 오가고 학창 시절의 추억을 곱씹는 시간이 지나자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어른스러워졌다. 주식과 아파트, 그리고 재테크, 직장과 사업의 고단함에 대한 푸념, 아이들 육아와 교육에 대한 걱정, 자동차, 그리고 최근 금융 위기에 대한 이야기.

서로 풀어놓은 이야기 보따리가 한가운데 수북이 쌓일 무렵, 한 가지 외로운 사실을 발견하곤 속으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친구들이지만 정작 IT 업계에 몸을 담은 이는 필자 혼자뿐. 첫 직장 이후 대부분의 직장이 IT 관련 업체였던 필자와는 달리 친구들 대부분은 IT와 무관하다.

홈페이지는 커녕 미니홈피를 가지고 있는 친구조차 손에 꼽을 정도고, 컴퓨터를 켜면 포털 연예 뉴스나 클릭하며, 정보 기기라고 해봐야 주머니 속의 휴대폰과 차 안에 놓인 내비게이션이 전부인 친구들. 필자가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 블로그니 RSS니, SNS, 소셜 플랫폼이라는 단어는 죄다 딴 세상에서 건너온 단어일 뿐이다. 얼마 전에 경품으로 받은 PMP로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를 챙겨 본다는 은행원 친구의 말이 반가울 정도.

이렇게 오프라인에 나와 있으면, 하루 24시간 중 16시간을 인터넷에 접속해 있는 필자의 생활이 왠지 정상적이지 않다는 느낌마저 든다. 사람은 여전히 아톰(Atom)의 공간 속에 살거늘, 보이지도 않는 비트(Bit)에 얽매인 일과 삶은 공허한 것인가? 술잔을 응시하며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 필자에게 친구들이 말을 건넨다.

“집에 있는 PC는 애들이 차지해서 한 대 더 사고 싶은데, 어떤 게 괜찮아? 요즘 노트북 PC가 엄청 싸졌던데? 추천 좀 해줘.”
“삼X 휴대폰 좀 싸게 살 수 없냐? 터치가 되는 걸로. 회사가 용산에 있냐?”
“인터넷은 매가X스가 좋으냐? 파X콤이 좋으냐? 하나X 쓰는데 느려터져서 바꿀 때가 된 거 같아. 위약금도 대신 물어 준다며?”

그래 인정한다.

보통 사람에게 IT의 효용이란 느린 컴퓨터를 교체하고 반짝이는 새 휴대폰을 장만하고 온라인 고스톱을 치기 위해 싸고 빠른 인터넷 회선을 계약하는 거다. IT 코리아니, 블로그가 세상을 바꾼다느니 아무리 떠들어 봤자 찻잔 속의 태풍일 뿐이다. 50인치 벽걸이 TV를 자랑하고 스팀이 나오는 드럼 세탁기에 감탄하고 새로 뽑은 중형 자동차가 더 사랑스러운 것이 IT의 현실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 방금 술잔을 나누었던 친구에게서 날아온 문자가 나를 확인사살한다.
“요즘 영화 어디서 다운받냐? 공유 좀 해주라”
” … … … “

다 아는 진실을 다시 한번 되풀이할 뿐이지만, IT는 대중의 현실과 융합할 때 그 빛을 발한다.

* 본 칼럼은 2008년 10월 30일 ZDnet Korea에 기고한 칼럼입니다.